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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가 사는 이야기

유시민의 글쓰기 방법

by 자유로운 코끼리 2021. 8. 28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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유시민이 감옥에서 썼다고 하는 항소이유서. 그는 21살에 200자 원고지 100장에 달하는 양을 초고도 퇴고도 없이 쭉 써 내려갔다고 했다. 3일에 걸쳐 10시간가량 생각한 후, 바로 작성했다고...... 심지어 그렇게 쓰인 글의 논리가 탁월해 판사들도 돌려봤다는 후문도 있다. 아직도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충격이 생생하다. 나는 수 번을 고쳐야 겨우 한편의 글이 나오는데,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인가. 범인과 천재의 차이인가, 하고 약간의 떫은맛을 느끼며 경탄했더랬다.

그러다 자신의 자신의 기획을 정리하려 책을 썼다는 마스다(*일본의 유명 기획자)의 말에, 유시민이 겹쳐 보였다. 마스다는 자신이 생각한 기획을 실행시키기 전 책으로 풀어내었다. 유언실행, 실행해 옮기기 전 자신의 정리된 생각, 가설을 단언하기 위함이었다. 그들에게 글은, 생각이 정리된 후에 쓰는,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잘 정리되어 있는가를 확인하는 수단이었던 것이다.

나에게 글이란 무엇일까. 나에게 있어 글은 '정리하는 수단'이었다.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을 때 글을 펼쳐 생각을 쓰고, 고치고, 쓰고, 고치고 이를 반복했더랬다. 그러다 보면 어느덧 시계의 분침이 되돌아와있었다. 분명 이것 또한 글의 쓰임이 맞지만, 뭐랄까, 좀 더 레벨 업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.

얼마 전, 긴장한 상태로 발표한 적이 있었다.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고, 준비한 내용은 그럭저럭 마쳤다. 하지만 예상치 못한 질문이 들어온 순간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. 머리로 정리해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. 정리되지 않은 언어가 입을 타고 흘렀다.

내가 말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? 꼼꼼하게 여러 예상 질문을 준비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, '정리하는 훈련'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. 나는 글로 써내린 후 이를 말로 표현하는 것은 썩 잘하는 편이지만, 생각을 바로 말하는 것은 미흡한 면이 있다. 이는 날 것의 생각을 글로 쓰면서 고치는 것이 익숙해졌기 때문이다. 그래서 앞으로는 글쓰기 전 머리로 정리하는 연습을 해보려 한다. 유시민이 그러하고, 마스다가 그러했듯, 나의 생각을 짜임새 있게 하여 바로 표현할 수 있도록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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